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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 김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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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 김일손

 

bg_01.png 55세(삼7)김일손(金馹孫) - (자 계운(季雲), 호 탁영(濯纓). 少微山人, 시호 문민(文愍))

 

시조 김수로왕의 54세손인 부 김맹의 3남 중 3자로서 슬하에 준손의 2자 대장(大壯)을 계자로 두였음.

 

- 1464년(세조 10년)

- 1498년(연산군 4년)

- 조선시대 학자이며 문신이다. 자는 계운(季雲)이며, 호는 탁영(濯纓), 소미산인(少微山人), 시호(諡護)는 문민(文愍)이다. 17세 때까지 “소학, 사서(四書), 통감강목(通鑑綱目)”을 배웠으며, 이후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평생 사사하였다. 1486년(성종 17년) 7월에 진사가 되고, 같은 해 11월에 식년문과 갑과에 제 2인으로 급제하였다. 처음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곧 정자(正字)로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하게 되었다. 그 뒤 진주의 교수(敎授)로 나갔다가 곧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 운계정사(雲溪精舍)를 열고 학문의 연찬에 몰두하였다.

 

이 시기에 김종직의 문인 중에는 김굉필, 정여창 등과 같이 수기(修己)를 지향하는 한 계열과, 사장(詞章)을 중시하면서 치인(治人)을 지향하는 다른 한 계열의 인물이 있었는데, 소릉복위 상소나 조의제문을 사초에 수록한 사실 등에서 그 정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세조의 즉위 사실 자체와 그로 인해 배출된 공신의 존재명분을 간접적으로 부정한 것으로서 당시로서는 극히 모험적인 일이었다. 이 같은 일련의 일들이 사림파의 잠정적인 실세(失勢)를 가져다 준 표면적인 원인이 되었다. 다시 환로(宦路)에 들어서서 승정원의 주서(注書)를 거쳐, 홍문관의 부교리, 교리 및 사간원 헌납, 이조정랑 등을 지냈는데, 관료생활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여 학문과 문장의 깊이를 다졌다.

그리고 주로 언관(言官)에 재직하면서 문종의 비인 현덕왕후의 소릉(昭陵)을 복위하라는 과감한 주장을 하였을 뿐 아니라, 훈구파의 불의, 부패 및 권귀화(權貴化)를 공격하는 반면, 사림파의 중앙정계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1498년(연산군 4년)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앞서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유자광, 이극돈 등 훈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에서 조의제문의 사초화(史草化)에 실은 것이 그에게 원한을 샀던 비행자들을 통하여 소릉복위 상소 등 일련의 사실로 말미암아 능지 처참의 형을 받게 되었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복관되었다. 그리고 중종 때 홍문관직제학, 현종 때 도승지, 순조 때 이조판서가 각각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탁영집”이 있으며, 회로당기(會老堂記), 속두류록(續頭流錄) 등 26편이 속동문선에 수록되어 있다. 자계서원(紫溪書院)과 도동서원(道東書院) 등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