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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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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 역사

 

bg_01.png 머리말

 

 

먼 옛날 한강(漢江) 북쪽에 단군 고조선(檀君 古朝鮮)이 건국한 이래 부여(扶餘), 옥저(沃沮), 동예(東濊) 등의 부족국가가 생겨나고 평양을 중심으로 부족국가가 형성되었다. 한강 남쪽으로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이 성립되어 삼한(三韓) 시대가 계속되었다.

 

B.C. 193년 연인(燕人) 위만(衛滿)이 난세를 피하여 들어와서 준왕(準王)을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되니 위만조선(衛滿朝鮮)이다. B.C. 108년 한무제(漢武帝)는 위만조선을 공격하여 멸하고 낙랑(樂浪), 임둔(臨屯), 현도(玄萄), 진번(眞蕃)의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였다. 이때부터 우리 민족은 한족(漢族)을 몰아내기 위하여 B.C. 57년에는 경주(慶州)를 중심으로 육촌장(六村長)이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왕으로 추대하여 신라(新羅)를 건국하고 B.C. 37년에는 졸본부여(卒本扶餘)를 중심으로 고주몽(高朱蒙)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구려(高句麗)를 건국하고, B.C. 18년에는 위례성(慰禮城)을 중심으로 고온조(高溫祚)를 왕으로 추대하여 백제(百濟)를 건국하고, AD. 42년 김해(金海)를 중심으로 구간(九干)이 김수로(金首露)를 왕으로 추대하여 가락국(駕洛國)을 건국하였다.

 

bg_01.png 가락국의 건국

 

 

옛 변한(弁韓) 지역은 낙동강 하류 김해(金海)를 중심으로 농산물이 풍부하므로 아도간(我刀干), 여도간(汝刀干), 피도간(彼刀干), 오도간(五刀干), 유수간(留水干), 유천간(留天干), 신천간(神天干), 오천간(五天干), 신귀간(神鬼干)등 부족장들이 공동으로 지배하고 있었다.그러나 신라와 백제가 건국하면서 이 지역을 침범하므로 이를 막아내기 위하여 이들에게도 통솔자 왕이 필요하였다.

이들 구간(九干)들은 서기 42년 3월 3일에 9간과 백성들이 시냇가에 모여 “나라를 다스릴 임금을 점지해 주십시오”하고 의식을 거행하던 중 구지봉(龜旨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었다. 이들이 구지봉(龜旨峰)에 올라 위를 쳐다보니 상공에서 자주빛 밧줄에 금합(金盒)이 매달려 내려왔다.

구간들이 달려가 금합을 열고 보니 황금빛 번쩍이는 알 여섯이 들어 있었다.

 

구간들은 “하늘이 필시 우리에게 내린것 이라”하여 구간의 우두머리 아도간(我刀干)의 집에 가져다 두었다.

다음 날 다시 열고 보니, 여섯의 금알은 늠름하고 준수한 동자(童子)로 화신하여 있었다. 그 중 제일 먼저 나온 동자의 이름을 머리수(首)자를 써서 수로(首露)라 하고, 본 시 금합(金盒)에서 나왔으므로 성(姓)을 ‘김(金)’으로 하여 구간들이 서기 42년 3월 15일에 왕으로 추대하여 가락국(駕洛國)을 건국하였다.

 

나머지 다섯 동자에게도 차례로 영토를 정하여

아나가야(阿那伽椰:阿羅伽揶:咸安), 고령가야(古寧伽倻:咸昌), 대가야(大伽倻:高靈), 벽진가야(碧珍伽倻:星山伽揶:星州),

소가야(小伽揶:固城)에 봉하고 서울을 김해(金海)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