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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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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유래

 

bg_01.png 백석(흰돌) 유래(흰돌 이야기)

 

 

흰돌(白石)은 도고산(道高山)과 안산(安山)이 서쪽과 북쪽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낙동강은 마을앞 동쪽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유유히 흘러내린다. 통일 신라시대부터 불도(佛道)가 서려있고, 낙동강의 기름진 땅에서 채소등의 농작물을 가꾸며 풍요로운 삶을 누려온 흰돌 마을, 행정구역상 칠곡군 기산면 노석리는 노석1리(노티)와 노석2리(흰돌)가 노석리로 변경되었다.

 

조선시대부터 성주군 선남면에 속했고, 1983년 칠곡군 약목면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1986년 칠곡군 기산면 노석리로 변경이 되었다.

불도가 높은 도고산과 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고있는 안산과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과 어우러진 정감이 넘치는 소쿠리 바가지 모양을 한다하여 “바가지마을”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bg_04.png (백석, 흰들과 흰돌)

백석(白石)은 흰 들에서 흰 돌로 바꾸어온 마을 이름으로 유래한다. 낙동강을 낀 백석은 옛날 마을 앞 강가 모래사장의 흰 모래가 많아일명 “흰들마을”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백석에 인접한 행정2리와 영동1,2리에 걸쳐있는 강변 경작지는 “힌들갯벌”이라고 불린다. 흰돌, 즉 백석으로 불리게 된 유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을 뒤편 고개에 있는 하얀 바위에서, 다른 하나는 도고산 백토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마을 뒤쪽 도고산과 연결된 “뒷고개”에 하얀 바위가 2개 있었는데, 이 흰 바위로 인해 백석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백석은 또 일제 강점기 시대 도고 산 줄기에 있던 노석리 광산에서 백토, 석회석, 금, 은 및 동이 많이 나와 이름이 불리었다는 설도 있다.

 

bg_05.png (흰들 갯벌과 채소농사)

백석마으로 시집가려면 채소 바구니를 만들어서 가야한다.

5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 백석에는 이 같은 우스갯소리가 있었다.이 시기에 채소는 백석 주민들의 주된 생계 농작물이었고 자식들 학자금의 원천이었다.사실 백석마을 앞에는 농사지을 농토가 별로 없다. 백석의 주요 농경지는 인접한 행정2리 일명 “나오태 마을”부터 영동1,2리까지 이어지는 강변 “흰들갯벌”이었다. 강가의 갯벌은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여 채소와 같은 농작물이 품질이 좋고 수확량이 많았다. 당시 흰들갯벌은 60% 가량을 백석 사람들이 경작을 했을 정도로 백석은 풍요한 마을이었다.

 

농경지가 백석마을 가까이 있지않는 관계로 주민들의 고달픈 삶을 엿볼 수 있는 말이 있다. 잠은 성주(선남면)에서 자고, 농사는 칠곡 (행정리)에서 짓고, 시장은 왜관(왜관읍)에서 본다고 말이다. 백석마을 사람으로서 채소 장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낙동강을 나룻배를 타고 건너서 왜관 시장에 팔아 생계를 이었다고 할 수 있다.

 

bg_06.png(흰돌나루와 주막)

백석에는 해방 이전까지 부산에서 “고배”로 불린 소금배가 올라왔고, 낙동강을 가로질러 소와 사람을 실어 날랐던 나룻 배도 70년대 초까지 있었다. 소금배와 나룻배가 정박했던 곳은 바로 마을 앞 강변“백석진 (흰돌나루)였다. 마을 입구에는 주막이 있고, 주막 정면 앞으로 나룻터가 있었다. 6.25사변 전후에 마을 나룻배는 백석마을에서 수확한 목화를 가마니에 담아 운반하는 데 사용됐다.(바위에 새긴 불심) 칠곡군 기산면 노석리와 행정리 경계에 나지막이 솟은 도고산 (348m)에는 봄에 진달래와 철쭉이 흐드러지고, 여름에는 옛 광산에서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일제 강점기 광석을 채굴하던 동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백석마을 서남쪽으로 둘러싼 도고산은 특히 불심이 높은 산이기도 하다. 도고산 중턱(노티마을) 커다란 바위들이 줄지어 지탱하고 있는 절벽 한 곳에 불상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로 5m. 세로 4.5m의 바위면에 새긴 4개의 불상이다. 바위 중앙에 본존불, 좌우에 협시보살, 맨 오른쪽에 작은 불상이 앉아있다. 삼존불좌상과 작은 불좌상이다. 보주(寶珠)를 새긴 특이한 보관(寶冠), 연꽃가지와 불상받침의 연꽃무늬, 붉은색, 주황색, 푸른색의 채색 등이 눈길을 모은다. 바로 ”칠곡 노석리 마애불상군“이다.

 

전문가들은 불상의 자세와 형태등이 경주 남산 신인사 사방불의 동쪽 보살상과 비슷한 모습으로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1977년 발견된 이 불상은 2년 뒤 보물 제655호로 지정됐다. 1300여년 전부터 불심이 서려있는 이 산은 바로 불도가 높다고 도고산으로 불리어졌으리라 생각한다. 백석은 그렇게 도고산의 기운을 품고, 낙동강 기름진 곳에서 채소를 가꾸며 살아온 주민들의 풍요로운 터전이다.

 

04.png (학봉 할배와 고향 사랑)

아름다운 강산과 천지에는 늘 따뜻한 사람들이 함께했다.

마을 젊은이들로 꾸려진 횃불회가 산업화 시절 고향 발전을 이끌었고객지에 계신 ”학봉할배“는 물심양면으로 고향에 대한 애틋한 정을 표시했다. 백석 사람들은 대구에 살고있는 김학봉 종원을 이렇게 불렀다. 출향인 김학봉 종원이 그동안 고향을 위해 남다른 애정을 베플었기때문이다. 이에 고마움으로 1986년 주민들이 마을 입구에 세운 김학봉 송덕비가 그것이다.

 

bg_08.png (팽나무와 마을 공동제사)

백석마을 남쪽 입구에는 220년된 암수 팽나무가 있었다.

지금은 암나무 한 그루만 보존되 있지만 원래 수나무 한 그루와 바로 옆 작은 나무 한 그루등 모두 세 그루가 마을 지켜주 는 당산나무라고 불리었다. 마을에는 동제를 지내는 정성이 부족하면 당산할매가 노하여 동네의 돼지를 잡아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제관이 한해 동안 남의 집 흉사에 가지않고 언행을 조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제관의 집안에 해가 미치기도 한다고 했다.

 

백석에서는 동제 외에도 기우제인 ”무제“외 ”도랑장“ ,홍수를 막는 ”방천제“ 등 다양한 마을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방천제는 낙동강 제방을 끼고 있는 마을의 독특한 제사였다. 주민들은 1900년대 초반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도고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무(물)제“라 불렀다.

(출처: 매일신문 (사)인문사회연구소)